인간은, 이렇게 사망(死亡) 당해서는 안된다

이법철 | 입력 : 2017/04/26 [07:58]

 

▲     © 이법철


불가(佛家)에는 “지구촌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인간에게 비의(秘意)로 전해오는 말”은 “탄생을 축하하는 손님 뒤에는 죽음을 조상(弔喪)하는 손님도 서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태어나 죽어가는 과정을 두고, “생노병사(生老病死)”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같이 태어나서(生), 늙고(老), 병들어(病), 죽는(死) 과정을 겪으며 죽는 것만은 아니다. 타고난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너무도 죽는 안타까운 사례는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마치 감나무에의 감 가운데 홍시(紅柿) 아닌 여린 땡감이 감나무에서 떨어져 죽듯이, 어린 인간이 죽는 것은 부지기수인 것이다.

지구촌의 인간이 장수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일찍 죽는 사례 가운데는 눈에 보이는 사고사(事故死)도 여러 가지 이지만, 불가해(不可解)한 신비한 돌연의 죽음도 부지기수이다. 나는 그 가운데 잠자면서 심장마비(心臟痲痺)가 닥쳐 주위 친지에 말 한마디 못하고 저승으로 떠나는 사례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80년대 초, 그해 여름에 나는 조계종 소속의 작은 절의 주지로 재직하였을 때 겪은 이야기이다.

나의 절에 신도 가운데 제법 부유하게 살고 있는 신도의 초청으로 오후 2시경 신도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를 집으로 초대한 여신도는 응접실에서 목적을 말하였다.

“딸이 스님을 뵙고 여쭈어 볼 얘기가 있다는 데요.”
안주인의 딸은 그 때 서울의 어느 명문대학의 3학년 학생이었다. 이윽고 딸이 나타나 나에게 합장하여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여대생의 눈과 얼굴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 생기 발랄한 젊은 나이에 얼굴색은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이었고, 눈은 피로에 지쳐 보였다.

여대생은 나에게 피로한 눈으로 애써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해몽(解夢)을 구하였다.

“저는 가끔씩 깊은 잠을 자다가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가위에 눌리는 적이 있어요. 누가 달려들어 목을 조여 숨을 못쉬겠어요. …또 버스가 와서 여행을 해야 하니 버스에 승차를 하라고 낯선 버스 안내양이 재촉을 해요. 그러면 저는 여행 갈 이유가 없다고 번번히 거절 하지요. 꿈에서 깨어나면 몸이 식은 땀에 젖어 있고, 말할 수 없이 피곤하답니다. 이게 무슨 꿈인가요?”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목을 죄이는 가위는….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 버스와 저승 안내양이 독촉을 하는 구나”절감하였다.

그러나 나는 모녀의 경악과 상심(傷心)을 걱정하여 “절에 와서 부처님께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게나.”라고 권장할 뿐이었다.

여대생의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 미국 여행 하겠다고 소원하니 그런 꿈을 꾸는 거야. 꿈이란 낮에 생각이 밤에 꿈으로 나타날 뿐이야. 내가 조만간 너의 소원대로 미국 여행비를 두둑히 마련하마.” 딸을 위로할 뿐이었다.

며칠 후 여대생의 어머니는 주위에 냉소하며 소문을 퍼뜨리기를 “딸이 법철스님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절에 와서 기도 하라고 권유하더군요. 요즘 절에 불공객이 없어 경제가 어려운가 보죠?” 라고 했다는 또 다른 신도의 전언이 있었다.

나는 부처님을 우러르며 내심으로 이렇게 말하였을 뿐이다. “부처님,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충고도 소용이 없네요. 아무럼 제가 부처님을 팔아 쌀되나 얻으려고 기도를 권장한 것은 아니지요.”

보름 후 나는 밤사이 “여대생 딸이 시신이 되었다”는 어머니의 대성통곡이 있는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죽은 딸의 사진이 있는 영정(影幀)을 들고 울면서 절에 와 나를 만나 흐느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새벽 1시가 되었는 데 딸의 방에서 TV가 크게 들렸다. 딸이 TV를 보다가 잠이 든 것 같아서 어머니는 딸의 방안에 들아가니 딸이 무섭게 코를 골아대더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딸을 꾸짖었다. “처녀가 그렇게 코를 골아 어떻게 시집을 가느냐? 잠을 잘 때는 TV를 끄고 자야지!” 어머니는 TV를 끄고 무섭게 코를 골아대는 딸을 두고 방안에 불을 끄고 나왔을 뿐인데 아침 식사에 나오지 않는 딸에게 “잠꾸러기야!” 호통을 치려고 방문을 열어 들어가 보니 딸은 이미 죽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분석하였다. “어머니가 무섭게 코를 골아대는 딸을 발견 하였을 때”는 딸은 무서운 가위에 눌려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죽음 직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때, 현명한 어머니라면 딸의 몸을 재빨리 흔들어서 가위 눌림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딸의 죽음에 대해 의사는 심장마비(心臟痲痺)라고 진단서를 발부할 뿐이었다.

한국사회는 물론, 지구촌에는 남녀들이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려 호흡을 못하고, 영혼이 저승으로 끌려가는 일은 부지기수이다. 초저녁에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같이 잠들었는 데 깨어보니 남편이 죽은 시신이요, 아내의 시신인 것이다. 밤사이 유명(幽明)을 달리하는 “안녕!”인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모두 심장마비로 처리할 뿐이다.

지구촌에 이 글을 읽는 인연 있는 독자들은 가족간에 “잠든 사이에 가위에 눌려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가?” 살피고, 가위에 눌려 돌연 무섭게 코를 골아대는 때는 가족이 있으면 항급히 흔들어서 깨워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애써 강조한다. 가위는 어른만 눌리는 것이 아니다. 소년 소녀, 처녀, 총각 등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가위 눌리는 것은 감기약같은 처방은 없다.

가위 눌리는 것을 어떻게 분석하고 해법은 무엇인가? 가위 눌리는 폐단은 수명이 짧은 남녀에게 찾아오는 목숨을 앗아가는 잡귀이다.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찾아와 목을 조르는 가위의 잡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가위가 눌리는 순간에는 “광명의 태양”을 계속해 생각하고 떠올려야 한다. 태양의 광명을 간절히 염원하면 어두운 밤 잠들 때 찾아오는 가위의 잡귀는 즉시 사라진다. 둘째, 잠자리 머리를 두는 위치를 즉시 바꿔야 한다. 예컨대 동쪽에 머리를 두고 자다가 가위에 눌리면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자면 가위의 잡귀가 사라진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1979년 가을 나는 춘천 소양강이 있는 청평사 큰 절에서 1km 산위에 토굴에 혼자 몇 개월 살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청하는 데,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바람소리가 귀에 거세게 들리며 머리상은 진돗개 두상이나 눈과 입은 악독한 사람의 상을 한 자가 나타나 나의 상체에 올라타고 털 난 두 손으로 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였다. 인적이 끊긴 적막한 산속의 토굴에서 숨이 막혀 죽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목을 조르는 자와 사투하여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깊은 산에 수행자들이 해오듯 “태양”을 마음에 간절히 떠올렸다. 나의 목을 조르던 산괴는 황급히 사라졌다. 그 후 나는 칠순(七旬)되는 나이에 가위의 잡귀는 다시 오지 않는다. 태양의 광명은 이 세상, 인간을 꿈속에 심장마비로 인도하는 잡귀를 일거에 사라지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들은 전지전능한 신통력으로 인간을 가호하는 신(神)의 형상을 오직 인간과 닮은 모습에서 찾으려 무진 애를 써온다 인간들은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통탄하며 “신은 없다!” 절망하기도 한다. 신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내놓고 요익중생(饒益衆生) 해온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태양과 달 등 자연이 인연하여 지구를 운영하며 생명체를 살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끝으로,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의 일부가 대책없이 비명횡사를 하는 가운데 “잠든 사이에 가위에 눌려 심장마비로 죽는 일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구의 뭇 생명이 따뜻하게 살도록 광명의 빛을 무상으로 주는 태양만큼 이익을 준 자칭 신이라는 인간이 존재했던 적이 있었을까? 인간에게 가위 눌리는 죽음의 공포가 몰려올 때면, 마음속에 “만고광명(萬古光明)의 태양을 떠 올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거듭하여 강조하는 바이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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